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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생, 이사 갈 거야! <완벽한 집 찾기 프로젝트> - 1부 본문

코시박 일기

미국 유학생, 이사 갈 거야! <완벽한 집 찾기 프로젝트> - 1부

코시박 2020. 7. 13. 14:04

천천히 돌아가는 천장 팬에서 시작된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거실 책상 위에 놓인 맥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둥- 둥-. 갑자기 화가 나고 모욕감을 느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훽 돌렸다. 옆 집에서 또 베이스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 집 거실 벽에 걸린 무소음 시계가 밤 10시 5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의 이웃은 매일 저녁 8시부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 것도 모자라 이젠 엠프 볼륨을 높이고 밤 11시가 다 되어서 악기 연습을 시작했다. 해마다 록 페스티벌에 놀러가 술 없이도 취한 것처럼 춤추고 놀만큼 밴드 음악을 좋아했는데, 아, 내 이웃은 이런 나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연주를 못했다. 저렇게 매일 연습하는데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한 톨도 늘지를 않았다. 얼마 전 공용 세탁실에 다녀오는 길에 그 이웃의 얼굴을 처음 보았는데, 160-165 cm 정도의 작은 키에 마른 체격을 가진, 앳되어 보이는 흑인 남학생이었다. 이웃은 흰색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커다란 흰색 반팔 티셔츠에 흰 반바지를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은 채로 나를 흘끗 보고 지나갔다. 그 와중에 매일 꾸준히 연습하는 태도는 본받을만해서 나도 스트레스받지 말고 이웃이 연습하는 시간에 침대 방으로 가서 공부하거나 글을 쓰자고 마음먹어 보았다. 그런데 이웃은 같은 자리에서 계속 틀렸다. 3M 귀마개를 하고 있어도 내가 좋아했던 베이스 기타의 그 심장을 울리는 두둥거림이 능구렁이처럼 스펀지 귀마개를 뚫고 넘어와 고막을 두-웅 때리는 순간, 눈을 지그시 감고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다. 아파트 벽과 바닥으로 전달되는, 육체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이 진동이 내가 절대 침착하게 견뎌낼 수 없는 그런 형태의 공해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말았다.

 

“당장 집으로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 

 

아, 맞다. 내 미국인 친구도, 한국계 교수님도, 공용 세탁실에서 만난 선인장 화분을 여섯 개나 키우는 앞 집 대학생도 침대 아래에 총을 두고 잔다고 했다. 게다가 밤 11시가 되어 가는 시각에 내가 그 집 문을 두드린다면? 엊그제 뉴스에서 본 총기 난사 사건이 떠올라 심장이 쿵쾅거렸다. 신고를 하면 경찰은 나를 도와줄까? 이전에 아파트 매니저로부터 나를 포함한, 민원인 주변에 사는 세입자들에게 단체 이메일이 들어왔었다. ‘너의 이웃을 존중하라’는 성경에 나올법한 메시지가 위압적인 어조로 적혀있긴 했지만, 말 뿐이었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이웃이 나가든가, 내가 나가든가! 1년 9개월 동안 행복하게 살던 집이었는데 갑자기 시끄러운 새 이웃 옆에 살게 되었다. 이것을 그저 불운이라 취급해야 하는 것에 억울해하던 중에 베이스 엠프 소리가 더 커졌다. 밤 11시 1분. 주먹을 단단히 말아 쥐고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벽을  쾅! 쾅! 쾅!  두드렸다. 베이스 소리가 잠깐 멈추더니 20-30초쯤 뒤 다시 둥- 소리가 났다.  쾅!쾅!  쾅!쾅!쾅!  내 예민한 분노는 벽을 타고 진동이 되어 옆 집 이웃의 방과 몸을 투과했을 것이다. 

 

밤의 침묵을 성취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온 신경을 흐르던 통쾌함이 빠져나가자 언어로 풀어내기 어려운 찝찝함이 밀려들어왔다. 어차피 조만간 도시를 이동해야 하니 더 훌륭한 집을 찾아 떠나는 데에 에너지를 쓰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월세 계약 만료 3개월을 앞두고 <완벽한 집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책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복사 붙여 넣기를 하듯 말한다. 목표가 분명해야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열의에 가득 차서 내가 원하는 조건들을 노트북을 열어 빠르게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1시간 안에 완벽하게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워드 프로세서 시험을 칠 때처럼.

 


     <완벽한 집의 조건>

  1. 조용해야 한다. 

  2. 벌레가 없어야 한다. 

  3. 위층에서 쿵쿵거릴 수 있으니 가장 높은 층이어야 한다. 

  4. 직접 온도 조절을 할 수 있는 중앙 냉난방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5. 아파트 유닛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거나 적어도 공용 세탁실이 가까워야 한다.

  6. 침대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7. 낮 시간에 햇빛이 잘 드는 밝은 집이었으면 한다.

  8.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서향집이면 더 좋지만
    베란다나 창문 앞이 다른 건물로 가리지만 않으면 된다.

  9. 직장과의 거리는 차로 15분 이내여야 한다.

  10. 비교적 안전한 동네여야 한다.

  11.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사람이므로 신선 식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집에서 가까워야 한다.
    ...

 

원하는 조건을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예산이었다. 비싸지 않은 아파트의 후기에는 바퀴벌레와 귀뚜라미 또는 도마뱀이 출몰한다는 내용이 있었고, 집 값이 비싼 동네에 있는 아파트는 전망이 좋고 러닝 할 수 있는 큰 공원이 있지만 출퇴근 시간에 차가 많이 막힐 뿐 아니라 비둘기들이 날아와 테라스에 각종 흔적을 남겨 놓고 간다고 했다. (깃털이나 분변 같은 것들… 분명한 영역표시다. 한 번 그들의 마음에 들면 1년 동안 내 테라스의 주인은 그들이 된다고 했다.) 운동할 때와 장을 볼 때 빼고 집에만 머물러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집순이에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집이다. 이사 갈 도시로 직접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국에?”

 

뉴욕과 뉴저지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수 증가세가 주춤해지고 텍사스 등 미국 남부와 중부 주들은 6월 초부터 비즈니스를 재개했다. 그래서 6월 12일부터 14일, 아파트 헌팅을 가기로 결단했다. 미리 방문 예약 전화와 문의 이메일을 돌렸는데, 관심이 있던 곳들 중 몇몇 곳은 대면 투어가 중단되었다고 했다. 정말 가는 게 맞는 걸까?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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