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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의 미국, 인종 이야기 - 한국인을 인종차별하던 사람들이 주로 흑인이었잖아? 본문

미국 사회, 이상한 나라

코로나시대의 미국, 인종 이야기 - 한국인을 인종차별하던 사람들이 주로 흑인이었잖아?

코시박 2020. 7. 9. 08:31

지난달, 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게 체포될 때,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던 영상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는 병원에 실려갔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렀고 그 사건을 시작으로, 몇 주간 전국적으로 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미국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흑인 인권에 대한 인식이 이전과는 달라졌고, 조심하고 차이와 차별에 대해 공부하려는 의지를 곳곳에서 보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백인 위주의 소도시에서도 백인 중고등학생들 그리고 대학생들이 피켓을 만들어, 일요일 오전에 Black Lives Matter를 외치며 차도 위를 행진하는 시위를 하더군요. 올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만큼 미국에선 여전히 중요한 이슈지만, 사건이 일어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한국 뉴스에는 덜 보도되고 있으니, 이제는 예전에 적어두었던 글을 공개해도 될 것 같아 독자님들께 제가 지난달 초에 친구에게 썼던 편지를 공유하려 합니다. 친한 친구에게 쓴 편지이다 보니 반말로 작성한 점, 읽으실 때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목: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네요.

작성일: 6월 1일, 6일

 

안녕 친구야,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메모해 둔 주제들이 벌써 여러 개 쌓였어. 너와 얘기 나누고 싶어서 그간 혼자 끄적거렸던 것과 어제, 오늘 했던 생각들을 보태 몇 자 적어본다. <중략> 무엇보다 천명선 수의학 교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와 닿았던 것이 있었어. 누군가는 기꺼이 ‘불편함’을 느끼면서, 본인이 살고 싶은 세상을 위해 신념대로 가치 있는 선택을 한다고 해. 그리고 나와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의 수가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되면, 그 신념은 집단에 의미있는 목소리가 된다는 내용이었어. 이 내용은 조금 뒤에 2019년 기준 미국 인구 중 13.4% 이상을 차지하는 흑인들의 인권 운동에 관해 쓸 때 다시 언급하게 될 것 같아.

 

2019년 기준 미국 인구 인종 구성 (출처: https://www.census.gov/quickfacts/fact/table/US/IPE120218)

 

미국 인종 구성의 복잡성과 특이성을 얘기하기 위해 각 인종에 대한 경험적 단상을 옮겨 볼게. 내가 경험한 흑인 개인들은 그들의 예술성과 문화적 유산을 굉장히 잘 유지하고 있고, 집단성이 도드라져. 미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일단 흑인이면 그들끼리 빠르게 가까워지고 포용하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었어. 미국 내에서 흑인 운동 역사가 길고, 미국을 벗어나서도 식민 역사에 관한 교육이 잘 이뤄진 것인지 학교 내에서 만난 흑인 친구들은 대체로 역사의식과 인권 의식이 높고 이런 주제를 토론할 때 의사표현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민감한 얘기도 전해 볼까 해. 미국 내 교도소 수감자의 비율을 확인하면 전체 인구 비율 대비 흑인 인구 비율이 제법 높아. 2015년 기사를 참고한 거라 수치가 더 업데이트되어야 하겠지만, 2010년 기준 미국의 인종별 인구 구성은 백인 64%, 히스패닉 16%, 흑인 12%지만 수감자 비율은 백인 36%, 히스패닉 21%, 흑인 40%라고 해. 그리고 20대 후반 흑인의 약 10%가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라는 내용도 보았는데, 꽤나 충격적이었어. 대체 왜 그런 걸까? 백인 경찰의 레이셜 프로파일링(인종차별적 검문 관행)이나 유색인종에 대한 과잉 진압과 수사도 관련이 있겠지. 그런데 아직 차가 없는 나를 제외 하고 우리 테이블에 같이 앉아있던 선배 두 명은 모두 우범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는 동네에 잠깐 주차하고 업무를 보고 오는 사이에 차 유리창이 깨져있고 앞좌석이나 뒷좌석에 있는 물건이 사라지는 사건을 겪었더라고. 아마 네가 최근에 봤을 한인 대상 인종차별 기사에서처럼, 운전해서 흑인 동네를 지나갈 때 동양인이라고 면전에서 욕을 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기 때문에, 그런 동네를 지나갈 땐 가능하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도 배웠어. 하하. 그 동네가 집 값이 저렴해도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집을 얻을 수가 없어. 사람마다 다르고 정직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텐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건들이 편견과 차별을 키우고 있겠지?

 

내가 만난 히스패닉계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많아서 그렇겠지만) K-pop이나 K-드라마를 나보다 훨씬 잘 알더라. 한국 문화를 모르고 관심이 없더라도 대체로 따뜻하고 여유가 있는 편이었어. 심지어 미국에서 만난 히스패닉계 중에 대놓고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다정하고 배려심 깊고 열정이 많은 친구들이었어. 동북아시아계를 보자. 중국친구들은 중국친구들끼리 똘똘 뭉치며 주와 도시를 가리지 않고 그 어떤 동양인을 봐도 일단 중국어로 말을 걸더라 (이건 파리 여행 때도 경험한 거긴 하다. 크크). 중국(인)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는 게 미국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개인을 보면 자신감이 충만한 거지. 내가 함께 일하고 대화해 본 중국인들은 특유의 통 큰 성품이 있고 유쾌하고 연구할 때는 꼼꼼했어. 일본인은 직접 만난 적이 없어. 올 가을 일본인 친구들과 같은 수업을 듣게 됐는데, 사람을 직접 만나면 남들의 입을 통해 들은 정보들이 분명히 바뀔 거라고 믿어. 내가 있는 곳만 그럴 수도 있지만 한국인/한국계는 교회를 제외하곤 좀처럼 뭉치질 않는 것 같아. 가톨릭 신자들도 미사에는 꾸준히 나오더라도 친목은 안 하고 조용히 집에 가시거나 미사 후에 점심 먹고 봉사하시는 것 같더라고.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가장 소중하고, 감사하고,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싶은 지인이자 교수님을 한 분만 뽑으라면 역시 3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한국인 교수님을 뽑을거야. 외국인 친구와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가 잘 통하고 즐거워도, 같은 문화를 공유한 한국 출신 선배가 가까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힘이 되더라고. 나도 앞으로 만날 한국 출신이나 한국계 후배들에게 꼭 이 교수님 같은 선배가 되고 싶어. 그렇다면 인구의 60%가량을 차지하는 백인은?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대놓고 인종차별하는 경우가 많이 없어. Southern hospitality라고 하지? 남부 사람들 특유의 순수함과 친절함이 있어. 하지만 이 편지의 핵심 맥락이 인종차별이니 그에 관해 좀 적어 보자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인도인을 배제한다든가, 아시아(뭐, 그들 기준으론 대체로 중국인-과 비슷한 한국인 포함 대만인, 태국인, 베트남인 등등-을 말함)계를 취업이든 결정권자 모임에서 배제하는 걸 목격했어. 다르고 몰라서 낯설어서 어색하게 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외국인인 걸 알게 되면 무시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고 (이건 비단 백인만 그러는 게 아니지), 아시아 여자만 만나는 백인 남자들(별칭: yellow fever; 흑인만 찾으면 jungle fever라고 부른대)도 있어.

 

단편들만 적어도 이 정도로 달라. 개별적 차이를 찾자면 기하급수적으로 다양한 특성들이 나올 텐데, 이 다양성이 강점이 되려면 서로 다름에 대한 포용력이 전제되어야 해. 어느 인종이나 좋은 사람들이 있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어. 좀 더 친절한 사람들이 있고 더 무례한 사람들이 있는 거지. 그런데 포용력은 본인의 집단 혹은 본인과 더 가까운 집단에만 발휘되곤 하더라. 흑인이 노예제로부터 해방된 게 1860년대 중반인데, 노예로서의 신분에서 벗어났다고 바로 지주가 되는 것도 아니었지. 노예제가 폐지된 뒤에는 경제력으로 계급을 형성하는 시대가 왔는데, 2020년 현재까지 흑인 인구의 다수가 빈곤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굳이 표현하자면 아주 소수의 출세한 운동선수와 연예인들을 제외하면 예나 지금이나 하층 계급인 셈이야. 백인은 전통적으로 백인을 끌어주고 계급 상승의 사다리라고 불리는 교육 조차 보호자의 경제력에 따라 그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특히 백인과 흑인의 소득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고, 이것이 그들 자녀들의의 교육 격차, 의료 격차 등으로 이어져. 다른 인종들끼리 사회적으로 어울리고 만날 기회가 적으니 서로의 다름을 경험하고 이해할 일이 드물고, 말에서 말로 전해오는 편견은 사실로 체화되어 진정한 인간 대 인간으로 볼 기회를 서로에게 주지 않아. 맥락이 조금 뭉개졌는데, 다시 돌아와서 전체의 10%가 같은 목소리를 내면 무게감 있는 의견이 될 것이라 했는데, 2019년 기준 이미 인구의 13.4%를 차지하고 있는 흑인들은 여전히, 수십 년을 상대적 가난 그리고 구조적 차별에 맞서 싸우고 있는 거야. 이 말은, 오래 걸리겠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13.4%보다 더 많은 우리 편이 필요하고, 우리를 지지하는 더 많은 사람이 힘 있는 자리로 올라가야 한다는 거지.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수자 인권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싶을 거라고 생각해. 억압이 있다는 걸 알면 감정적으로 억압당하는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으니까. 그런데 이번 조지 플로이드 시위 규모가 커질수록 미국 내 한인들의 심리적 반발도 커졌어. 미국에서 코로나 유행이 시작될 무렵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안들에게 행해진 폭력을 직접 당했거나 알고 있거든. 그저 길거리를 걷고 있는 한국인 할머니에게 “코로나 바이러스, 너네 나라로 꺼져"라며 면전에서 욕하고 폭력을 저질렀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떤 인종이었는지 미국에 있는 한인들은 모두 기억해. 시위가 과격하게 바뀌니 90년대 LA 폭동을 경험한 어르신과 그 가족을 포함한 한인 커뮤니티는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어. 현재 동부지역에서 금은방을 하고 계신 한 한인은 며칠 전 폭동 때 CCTV로 본인 가게가 털리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으셨다고 해. 경찰에 신고해도 이미 늦었거나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을 것이고, 본인이 가게로 직접 뛰어가서 항의하면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까. 나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해 왔던, 위협하고 있는, 위협할 수 있는 사람들의 다수가 특정 인종이라는 걸 경험한 사람들에게 “폭동은 일부 흑인이 일으킨 거예요, 흑인 인권 운동을 지지해 주세요”라고 말한다고 같은 편이 되어 줄 수 있을까?

 

흑인들은 백인의 특권과 백인 우월주의를 백인뿐 아니라 히스패닉, 아시안 등 다른 인종들도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라고 지적해. 공감해. 백인들만 교육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인종들도 인종차별에 관한 교육을 ‘서로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아시안이 차별받을 때는 그 누구도 연대해 주지 않았고 흑인들이 특히 오히려 폭력에 가담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 아시안이 당하는 인종차별은 뭘까. 내 생각에 아시안이 겪고 있는 차별은 ‘존재의 지워짐’이야. 수가 적어서도 있지만, 중국이 G2로 성장했든 K-문화가 북미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든 간에 아시아는 미국보다 후진국이고 이들은 선진 미국을 배우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라고 폄하 당하는 측면이 있어. 일부 흑인은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은 이류 백인(상대적으로 교육을 잘 받았고 전문직을 차지하는 비중이 흑인보다 압도적으로 높으며, 기득권의 쪽에 선다고 생각하는 듯)으로 삼지, 아시안을 차별받는 소수자로 보지 않아. 이류 기득권을 조롱하는 것이기에 본인들이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 수도 있지. 백인들은? 본인들이 흑인을 차별하는지도 모르는데 아시안 차별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있었을까? 따라서 아시안은 미국에서 충분히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고, 종종 존재가 지워지고, 다른 인종들이 연대해 주지 않더라고. 나는 흑인들이 동양인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것을 굴절 혐오라고 생각해. (물론 아시안의 흑인 혐오도 만만치 않아.) 흑인의 이 굴절 혐오는 백인 사회에서 누적된 차별로 억압된 불만을 인구수가 적고 체격이 작지만 전문직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높아 '소수자처럼' 보이지 않는 동양인에게 풀어내는 것 같아. 내가 너무 아시안 중심적인 시각으로, 아시안이 그간 표출해 온 흑인 대상 혐오를 눈감아 버리는 걸까? 

 

이렇듯 미국 사회는 가까이 들여다보면 갈등과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야. 인종의 차이와 계급의 차이로 인해 촘촘하게 쌓여온 차별의 결과겠지. 그런데 이 속에서도 개인은 결국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하더라. 아마 그 뉴스 봤을 거야. 미국 실업자 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기사. 일차적으로 코로나로 인한 대량 실업 사태가 일어난 것이 맞아. 그런데 이차적으로 실업급여가 (도시에 따라 다르지만, 뉴저지처럼 시급과 임금이 높은 경우) 1인당 300만 원 가량이고 약 2개월간 지급된다는 기사를 봤어. 노동자가 평소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받거나 조금 더 많이 받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 실업 급여를 신청하는 신청자가 압도적으로 늘어난 상황에 대해서는 한국 기사에서 잘 다루지 않더라고. 뉴스는 새로운 숫자가 나오면 그것에만 열광해. 왜 그 숫자가 나왔는지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더 복합적으로 찾아보고 전달해 주지 않아. 간단한 것이지만 이 실업급여의 예가 내가 보는 미국 사회와 한국에 소개되는 미국의 차이점이야.

 

출처: http://www.inews24.com/view/1255786

 

지금 이렇게 빠르게 쏟아낸 생각에서 읽을 수 있듯, 나는 코로나 사태를 통해 사람과 계층과 사회와 입장이 복잡하게 관계하고 얽혀있음을 체감하고 있어. 이번 BLM 시위를 둘러싸고 나와 내 주변의 한국 사람들이 했던 생각들조차 굉장히 입체적이야. 그저 무엇하나 말로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원인과 결과를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는 것만 선언할 수 있어. 

 

아침에 본 인스타그램 UN Women 포스트 “uplift black women & girls”에 “uplift all women & girls”라고 댓글을 단 백인 여성에게 인도계 여성이 이런 댓글을 달았더라. “여기에 모든 여성과 여자아이들의 인권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너 지금 여성 인권에 대해 발화하는 사람에게 모든 인권은 중요하다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지금은 흑인 여성과 흑인 여자아이들이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게,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릴 수 있게 시간을 내어줘야 할 때라고.” 앞서 언급한 한인 커뮤니티의 상황처럼 신념을 지키는 것과 나의 이득이 침해받는 상황이 충돌하면 ‘내가 버틸 수 있는 수준’까진 신념대로 행하겠지만,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라면 일단 내가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참 주관적이고 변동성이 크다 싶어. 다만, 내가 여전히 불편한 지점이 있다고 해서 black lives matter에 대고 당장 Asian rights matter, don’t tell us virus 하고 소리치지는 않을 거야. 지금은 옳은 것에 연대하고, 마이크를 내어주고, 지지하고, 그리고 아시안으로서 목소리를 낼 때 그들도 연대하기를 기대하는 것을 선택하려고 해. 

 

P.S. 미국에 있으면서, 사회에 퍼져있는 여러 겹의 차이와 차별과 분노와 그것들을 이해해 보려는 인간의 노력이 보여. 그 안에서 “나는 왜 상대를 지지하려고 하지?”라는 질문을 꼭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정말 가슴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옮길 것인지, 내가 당장 마음이 불편해서 하는 연민의 말인 것인지.

 

- 아직도 고민이 많고 성장해야 하는 너의 친구 씀


 

경험이 쌓이고 이해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생각이 바뀔 수 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편하게 쓴 글이라 거친 부분도 많고 위에 적은 인종별 특성도 그동안의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풀어본 것이니, 제 글이 어떤 선입견을 쌓는데 일조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하네요. 의견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이나 방명록에 남겨주세요. 저와 다른 의견들도 언제든 환영이고, 언제나 생각을 다듬고 배우고 싶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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