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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당근마켓, 순식간에 팔려버리는 중고 거래 앱 Let Go 본문

미국 사회, 이상한 나라

미국의 당근마켓, 순식간에 팔려버리는 중고 거래 앱 Let Go

코시박 2020. 7. 27. 09:25

 

안녕하세요, 해외에서 유입되는 인구 때문에 한국의 확진자 수가 평소보다 조금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독자님과 독자님의 가족 구성원들이 무탈하시길 바라며 이번 포스팅을 시작해 볼게요.

 

이전 포스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며칠 뒤 다른 도시로 이사 갑니다. 모든 짐을 가지고 갈까 하다가 이왕 이사 가는 김에 짐을 줄여보자고 마음먹고, 중고로 구매했거나 저보다 먼저 떠난 국제학생 친구들이 주고 간 물품들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중고거래 사이트는 Craigslist입니다. 그런데 미국 친구들로부터 워낙 무서운 (^^;)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서, Craiglist 대신 요즘 한국의 당근 마켓만큼 핫하다는 미국 중고거래 앱 Let Go Offer Up을 이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미국 중고거래계의 어벤저스 Let Go, Offer Up, Craigslist 앱

 

코시박의 판매 물품

제가 판매하려던 물품은 3년 전에 중고로 샀던 검정석 4단 서랍, 친구에게 얻은 빈 백(Bean bag), 3년 전에 실내에서 운동하려고 샀으나 바깥에서 러닝 하는 게 더 좋아서 거의 쓰지 않은 스테퍼(stepper), 역시 친구에게 얻었으나 거의 쓰지 않은 27.5 인치 LED 모니터였습니다. 현지 시각 새벽 3시쯤 사진을 단정하게 찍어 올렸더니 그 새벽에 포스팅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좋아요 (favorite)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새벽 6시 반 정도가 되니 본격적으로 문의 메시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4단 서랍과 빈 백. 며칠 안에 팔고 떠날 계획이기 때문에 보통의 중고가 보다 더 싼 값에 내놓긴 했는데요. 개강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학생들에게 필요해 보이는 물건이 인기가 많더라고요.

 

Let Go 앱 메인 피드 화면. 기대보다 중고 거래가 잘 되어서 (?) 평소 잘 쓰지 않는 와플메이커도 내놓기로 했습니다.
누군가가 좋아요 (favorite) 버튼을 누르면 어떤 사람이 제가 올린 어떤 상품을 찜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대화창입니다. 서랍과 빈백과 스테퍼를 팔고 나서 거래자들과의 대화창을 제외한 문의 창들을 모두 삭제했고요. 모니터 구입을 문의한 분과 아직 협의 중입니다. 이 분은 아마 그냥 문의만 해 보신 분 같아요.
인기가 넘쳤던 4단 서랍장. 3년 전에 중고로 $35에 사서 잘 쓰고 $20에 내 놓았습니다. 사실 $30에 내 놨어도 팔렸을 것 같아요.
저희 동네에서 중고 모니터 가격은 $25~$30 선이더라고요. 그런데 제 모니터가 워낙 새 것이기도 하고 안 팔리면 이사갈 때 들고가서 팔거나 제가 쓸 생각이기 때문에 그냥 $40으로 유지 중입니다. 가격이 높으니 확실히 문의가 적습니다.

 

활성화 정도: Let Go > Offer Up

아침이 되어 알게된 점이 있습니다. 저희 지역에서는 Offer Up 보다는 Let Go 거래가 훨씬 더 활발하고 커뮤니케이션 속도가 빨랐습니다. 그리고 진짜로 본인이 필요하고 사고 싶어서 사는 사람과 그냥 떠 보는(!) 사람은 응답 속도에서 큰 차이가 나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Let Go 앱에 집중하기로 하고, 따로 전화번호 교환 없이 앱 채팅으로 만날 위치와 시간을 정하고 현금으로 직거래를 했습니다. 물건 가격을 싸게 내놓아서인지 깎아달라는 분들은 안 계셨습니다. 

 

사람들

이용자들은 다양했습니다. 학교 근처에 얻은 아파트를 꾸미려는 대학생부터, 청소년기 자녀를 둔 어머니, 소중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느라 1년 사이에 100 파운드 (약 45kg) 가까이 살이 쪘는데 제 스테퍼를 보고 운동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여성분, 손자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물건을 사고 싶다는 할머니, 본인의 사고 판 내역을 살펴보니 아무리 봐도 중고 물품을 사다가 되파는 듯한 젊은 아빠에 이르기까지.

 

서랍을 사 간 여성분은 아들 서랍이 필요해서 오셨는데, 혼자 들 수 없으니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아들이 귀찮다고 따라오기 싫다고 하셨답니다. 저희 집이 2층이라, 제가 함께 서랍을 들고 내려가서 차에 실어드렸습니다. 빈 백을 사가기로 하신 여성분은 약속된 시간에 연락이 되지 았았습니다. 스테퍼를 사러 오신 여성분은 원래 빈 백과 스테퍼를 같이 사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먼저 빈백을 사겠다고 약속한 분이 나타나지 않아서 덕분에 본인이 원래 갖고 싶었던 것을 모두 사 가셨습니다. 두 개를 한 번에 사가시니 제 일이 줄어서 1불을 깎아드렸어요. 이 분은 지난 1년 동안 본인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가장 친한 친구가 뇌암으로,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뒤에 기댈 것이 먹는 것 밖에 없었다고요. 마음이 짠해져서 향초를 좋아하냐고 묻고, 좋아한다길래 제가 크리스마스 때 사서 4분의 1 정도만 태우고 아주 가끔 고기 구운 뒤에만 꺼내 쓰던 양키 캔들 2개를 덤으로 드렸습니다.

 

안전

저는 곧 이사를 나갈 예정이고, 모든 거래가 오전과 낮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저희 집 바로 앞에서 거래를 했습니다. 또 대화 나눈 분들과 직접 나오신 분들 모두 여성분들이어서 위험하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그래도 미국에서 중고 거래를 할 땐 본인 집 안이나 바로 앞보다는 주차장이나 학교 앞 같은 공공장소에서 거래하는 것이 안전하고, 늘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Let Go도 우버 앱이나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때 처럼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를 평가할 수 있는 방식으로 되어 있으니 구매 전에 그 사람이 받은 평가 이력을 보는 것도 안전한 거래를 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저는 짐 정리를 70%가량 마쳤습니다. 재작년에 쓰던 무빙 박스가 조금 부족해서 추가로 주문을 했는데, 추가분이 배달되어 오면 아직 담지 못한 물건들을 조금 더 담고, 소규모의 가구들을 싣고 이사 갈 일만 남았습니다. 아파트 평면도를 출력해서 가구를 어떻게 배치할지 손으로 끄적여보니 벌써 설레고 즐겁네요! 딱 일주일 뒤면 새 집에서 포스팅을 하고 있을 거예요.

 

독자님들도 7월 마지막 주, 계획하고 계신 것들, 하고 싶은 모든 것들 하시면서 활기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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