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생, 이사 갈 거야! <완벽한 집 찾기 프로젝트> - 2부
완벽한 집 찾기는 essential travel, 필수적인 여행의 이유다. 결심했다.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시국에 집을 보러 가기로. 젊은 사람이 코로나에 걸리면 과민 면역 반응으로 더 괴롭게, 더 아프다가 죽는다는 기사를 본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반드시 여행을 떠나야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면역력이다! 들기름에 구운 계란 프라이, 팬케이크 한 장에 메이플 시럽, 발갛게 잘 익은 작은 토마토 한 개와 두유 반 컵으로 든든한 아침을 먹고 비장하게 우버를 불렀다. 평소엔 43불이면 공항에 갈 수 있었는데 팬데믹 때문인지 평소보다 대기 차량이 적고 편도 비용도 50불이 넘어갔다. 팁 15%까지 하면 왕복 택시비만 얼마인가!
총 7시간의 환승과 비행 끝에 목적지 도시에 도착했다. 오후 5시 반이 되었는데 햇살이 쨍했다. 아파트 투어를 위해 나에게는 내일 단 하루밖에 시간이 없기 때문에 오늘은 마지막으로 추가 자료조사를 하고 푹 쉬며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토요일 아침, 호텔방 안은 암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덕분에 새벽부터 눈이 부셨다. 동향집이면 어쩔 수 없이 아침형 인간이 되겠군, 생각했다. 커튼을 걷자 도시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커다란 산이 창문에 걸렸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하루뿐이다. 한국인답게 호텔 조식을 든든히 먹고, 한 시간 반 간격으로 잡아둔 투어를 위해 깨끗한 마스크와 장갑과 선글라스를 끼고, 신발을 신느라 현관 옆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여분의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챙겨 호텔을 나섰다. 날씨가 화창했다!
거울 앞에 섰을 때
핑크색 두건과 빨간 담요를 뒤집어쓰면 웃기겠다고 생각했다.
출처: 세이클럽 비공개 아바타 이미지
1 bedroom, 475 sqf. $665/mo. 유틸리티 일부 포함. 통근시간 편도 15분.
9시 50분에 첫 번째 아파트 커뮤니티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커뮤니티로 들어오는 길에 잔디가 깔린 공원이 있고 러닝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차로 조금 더 내려오다 보니 그 공원은 공동묘지였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직원이 나타나지 않아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5분쯤 뒤 누군가 출근했다. 코로나 유행 때문에 나에게 COVID-19 관련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를 주었고 방문자 정보 확보에 동의하는 서명을 요구했다. 요즈음 직접 투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길 찾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갑자기 영어 듣기 평가 시간이 되었다. 아날로그 지도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돌려가며 마주한 집은 인터넷에서 본 집과 분명히 같은 배치고, 같은 디자인의 가구인데 훨씬 좁고 낡고 어두웠다. 사이즈만 보면 스튜디오 (한국의 원룸 개념) 여야 하는데 그 좁은 공간에 문을 달아 원 베드룸 (방 한 개가 따로 달린 집)이라고 내놓았던 것이다. 도시는 워낙 월세가 높으니 예산에 맞춰 마이크로 아파트에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상과 현실의 간극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다시 오피스로 돌아갈 때는 약 500실이 있는 커뮤니티의 규모와 나무와 풀과 새들이 보였다. 인도와 계단과 난간에 새 똥이 많았다. 어떤 아파트의 구글 후기처럼.
1 bedroom, 563 sqf. $820/mo. 유틸리티 불포함. 세탁기 건조기 훅업 (세탁기를 사다 설치해서 쓰면 됨). 통근 시간 편도 7-10분.
복잡해진 심경을 가라앉히고 약속시간 5분 전에 두 번째 아파트 커뮤니티에 도착했다. 이 곳은 다운타운에 있는 신식 아파트였다. 동네도 건물 외관도 깔끔했다. 직원은 커뮤니티 지도와 아파트 리플릿을 챙겨주고 직접 모델하우스 유닛으로 찾아가도록 했다. 오늘 볼 수 있는 집은 방 두 개짜리 아파트라서 넓이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는데, 리플릿에 적힌 공간 정보로 원 베드룸 사이즈를 대강 가늠해 보고, 공간의 가격을 셈해 보았다. 셀프 투어를 마치고 열쇠를 오피스 직원에게 반납하며 입주 가능한 날짜를 다시 물었는데, 전화 상담 때 얘기해 주었던 것과 달리 563 sqf $820 원 베드룸 아파트는 8월 7일 이후에 가능하고 880 sqf $915 원 베드룸 아파트는 6월 20일 이후에 입주할 수 있다고 했다. 각각 입주 날짜와 예산이 맞지 않지만 학교와 가깝고 시설이 좋아서 주변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나에게 다운타운 라이프란 모름지기 쪼리를 신고 노트북만 들고나가 아침마다 과제를 하러 갈 카페나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데 쓸 돈을 줄여서라도 다운타운에 있는 다른 아파트라도 찾아보겠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나 로컬 카페도 차로 가야 했다.
점심을 먹으러 Chili's에 갔다가 10분 대기 시간이 있다고 해서, 계란 요리를 파는 옆 집으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이 집이 로컬 맛집이었다. 후후. 가벼운 BLT 샌드위치와 계란 요리 하나를 감탄하며 먹었더니 기운이 돌아왔다. 아, 역시 기본을 잘하는 집이 최고야.
이후 이어진 네 군데의 아파트 투어는 모두 마스크와 장갑을 철저히 착용하고 최대한 6 피트를 유지한 대면 투어로 이루어졌다. 두 곳은 몇 달 전부터 눈여겨보던 ‘꽤 좋은 동네'에 있는 단지들이었는데, 내가 선호하는 타운하우스 분위기에 가족 단위 거주민들이 주로 입주한 곳이었다. 가까운 곳에 큰 공원이 있고,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분위기'가 좋았다.
1 bedroom, 610 sqf, $892/mo. 유틸리티 불포함. 세탁기 건조기 포함. 통근시간 편도 20-25분. 학생 할인 있음.
1 bedroom, 675 sqf, $850/mo. 유틸리티 일부 포함. 세탁기 건조기 포함. 통근시간 편도 25-30분
다른 한 곳은 장을 볼 가게도 가깝고 어르신들이 주로 사시는 동네라 주변 분위기도 조용해 보였는데 건물이 많이 낙후해서 커뮤니티에서 관리를 열심히 (할지 모르겠지만, 한다고) 해도 벌레가 나올 것 같았다.
1 bedroom, 697 sqf, $720/mo. 유틸리티 일부 포함. 통근시간 편도 15분
오후 시간이 늦어질수록 체력이 떨어졌다. 혹시 예민해질수록 입냄새가 심해지는 건가, 아니면 입냄새 때문에 더 예민해지는 건가! 어떤 우버 기사는 오늘 팁을 쪼잔하게 주는 아시안이 탔다고 집에 가서 내 흉을 볼지 모르겠다. 팁은, 주는 사람의 Kibun (기분)에 달려있다. 마지막 집이 남았다. 아, 내일은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이러다 내일자 항공편을 변경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1 bedroom, 780 sqf, $820/mo. 유틸리티 불포함. 세탁기 건조기 포함. 통근시간 편도 10-13분.
파란 하늘과 비슷한 색의 마지막 아파트 커뮤니티 주변에 들어서서 천천히 동네를 살폈다. 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이층짜리 건물들이 디귿자로 늘어서 있었는데 납작하게 눌린 레고 블록 같았다. 오피스에 들어서자 경쾌한 목소리 톤을 가진 히스패닉 직원이 반겨주었다. 간략히 방문자 서명을 하고, 원 베드룸 유닛으로 향했다. 수영장, 주차장, 경쟁하듯 화분들로 베란다를 꾸민 집들, 식물을 죽인 집들을 지나 모델하우스에 도착했다. 이 곳은, 넓이도 디자인도 홈페이지에 나온 사진과 같았다. 오히려 사진보다 넓어 보였다. 내가 지금 사는 집도 혼자 지내기에는 꽤 넓은 편인데 테라스가 있어도 실내 공간이 이 정도면, 여태껏 내가 본 원베드 룸 아파트 중엔 가장 넓은 집이었다.
“클래식 유닛도 볼 수 있을까요?”
오피스에서 준 리플릿에 대리석 스타일의 최신 설비로 업그레이드한 유닛도 있고 ($925-980), 클래식 유닛이라고, 공간 넓이와 제공되는 기기의 종류는 같은데 주방 설비가 나무나 합판으로 된 유닛 ($775-820)도 있다고 했기 때문에, 클래식 유닛을 확인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같은 버전의 가격 차이는 전경과 위치, 그리고 세탁기와 건조기 포함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이 자본주의의 나라!
“이 아파트를 지을 때는 미국에서 흔치 않게 콘크리트로 지어서 2층에 살아도 나무집에 살 때만큼 발소리를 조심하지 않아도 돼요. 옆 집 음악 소리도 안 들려요.”
“유틸리티 중 수도 요금, 해충 방제, 쓰레기 처리 비용은 오피스로 내시면 되고 인터넷, 전기, 가스요금, 세입자의 아파트 보험은 각 회사로 직접 납부하시면 돼요.”
매달 해충 방제 비용을 ($3) 낸다는 게 신기해서 물어보니 날씨에 따라 격주에 한 번도 한다고, 벌레로 인한 컴플레인이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유레카. 유레카. 여기다.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마스크로 가리고 더 필요해 보이는 정보를 수집했다. 학교 학생 할인 ($15 할인)과 직접 방문 후 계약 시 적용되는 special offer (이사 들어오는 달 1회 $200 할인) 도 적용받기로 했다. 나의 이사 날짜가 8월 1일이고, 아직 6월 중순이기 때문에 7월 이후에 다시 전화를 해서 입주 가능한 유닛들이 더 있는지 확인 후, 원하는 계약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7월 초부터 7월 중순인 오늘까지 마지막 아파트에 애플리케이션을 내고, 소득 증빙과 신용 조회를 받고 접수 승인 소식을 들었다. 8월 1일에 입주 가능한 클래식 유닛은 1층 집들 밖에 없었는데, 직원의 안내대로 며칠 기다렸더니 딱 하나 올라온, 창 밖으로는 산이 보이고 주차장이 가까우며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 조용한 2층 클래식 유닛($820)을 확보할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도 편도 10-15분 내외로 예상된다. 5분 거리에 월마트와 홀푸드 마켓이 있고, 10분 거리에 한국 마켓이 있다. 코로나 사태로 올 가을 학기는 거의 다 집에서 가르치고 배우고 연구할 예정이다. 살다 보면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서 1년만 살고 나오게 될 수도 있고, 지금 사는 집처럼 고민 없이 연장해서 살고 싶은 집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앞으로 1년은 지금보다는 옆 집에 누가 사는지, 몇 시에 무슨 연주를 하는지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고, 불필요한 화를 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제 이사까지 2주가 남았다. 소금을 살짝 뿌려서, 목숨 걸고 시작한 <완벽한 아파트 찾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마무리되어 간다.
1부에서 공유한 <완벽한 집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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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해야 한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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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가 없어야 한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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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에서 쿵쿵거릴 수 있으니 가장 높은 층이어야 한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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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온도 조절을 할 수 있는 중앙 냉난방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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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유닛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거나 적어도 공용 세탁실이 가까워야 한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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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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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에 햇빛이 잘 드는 밝은 집이었으면 한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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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서향집이면 더 좋지만 (동향집, 아침 일찍부터 밝고 오후에 빨리 어두워짐)
베란다나 창문 앞이 다른 건물로 가리지만 않으면 된다. (O) -
직장과의 거리는 차로 15분 이내여야 한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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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안전한 동네여야 한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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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요리를 해 먹는 사람이므로 신선 식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집에서 가까워야 한다. (O)
이 정도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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