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책 리뷰

겨울 방학에 본 영화 7편

코시박 2020. 12. 24. 02:52

대학원 수업과 학부생 대상 두 과목 티칭이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된 박사 첫 학기를 마치고, 첫 겨울 방학을 맞았다.

 

방학이 시작된 뒤부터 지난 열흘 동안은 푹 쉬었다. 무엇을 하면서?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보면서!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최근에 본 영화들에 대한 인상이 어땠는지 짧게나마 적어본다.

 

보고 싶은 친구와 줌에서 만나 시간에 쫓기지 않고 수다를 떨고 우리끼리 추진해오던 여성영화제도 오랜만에 재개해 <더 히트>라는 영화를 함께 봤다. 배우 멜리사 맥카시의 연기를 감탄하면서 봤는데,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호쾌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해피스트 시즌> (한국어로는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로 공개되었다고 한다)을 함께 보는 것이었는데, 한국에는 hulu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는 것인지, 친구의 컴퓨터에서 영화를 재생할 수 없어서 만남 당일에 영화를 바꿨다. 이 영화 <해피스트 시즌>은 나 혼자 따로 봤다. 스토리는 속 터지는데 쉽고 공감 가고 캐릭터들이 매력 있었다.

 

이후로는 동생이 추천해 준 한국 영화들 <풍수><사도>도 하루에 한 편씩 보았다. 한국 역사물 영화를 볼 때는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원인이 대체로 혈연과 비뚤어진 자식 사랑(정신적 학대도 가정 폭력)이었기 때문에 왕, 권력, 그리고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도 답답한 장면들이 있었다. 비슷한 계열 영화랑 비교하자면 개인적으로 <풍수>보다 <관상>이 재밌었다.

 

학부 때 미루다가 볼 기회를 놓쳤던 <델마와 루이스>도 봤다. <델마와 루이스>는 두 캐릭터가 쌓아가는 선택과 델마가 점점 루이스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영화에서 강간이나 성희롱 같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오른손이나 왼손의 세 번째 손가락을 티비 화면을 향해 들어 올려 불쾌감을 표시하며 영화를 보았는데, 중반부에 시원하게 복수하는 장면이 나와 통쾌했다. 

 

어떤 알고리즘에 의한 것인지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나오는 영화인 <나잇 & 데이>도 봤는데 킬링 타임용으로 보기에도 아쉬웠다. 역시 비슷한 이유로 <건축학개론>도 다시 보게 됐는데, 20대 때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완전히 남자 감독의 시선에서 만든 영화였기 때문에 그때도 지금도 이해도 공감도 되지 않았던 거다. 여자 주인공이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굳이 첫사랑 남자를 찾아와 집을 지어달라고 하는 것부터, 여자 주인공은 돌아가실 날이 머지않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 계획이나 남자 주인공은 곧 결혼해서 미국으로 이주할 예정이었는데, 결혼과 미국 이주를 미루면서까지 첫사랑이 원하는 대로 설계를 바꿔 집을 지어준다. 그것도 주인공들의 추억을 평생 떠올릴만한 요소를 담은 집으로. 여자 주인공은 "썅년"이 되고 남자 주인공만 멋있는 선택을 하는 걸 보고 (...) 나는 중반부부터 결말까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봤다.

 

돌아보니 전반적으로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나 여성 주인공들이 남성 감독의 전형적인 시선으로 그려지지 않는 영화를 봤을 때 만족도가 높았다. 어차피 영화는 나를 위해서 내가 고르고 내 시간을 써서 보는 것이니, 앞으로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신경 써서 모아봐야겠다.